1616년, 광해군 재위 당시 여진족이 만주에서 건국한 후금은 “광해군”의 적절한 외교정책으로 큰 마찰이 없이 지나간다. 그 후, 광해를 내쫓고 인조반정으로 왕위를 차지한 조선의 16대왕 “인조” 후금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광해와 다르게, 인조는 금나라를 싫어하였다. 후금을 배척하는 ‘향명배금’정책을 발표하고 후금의 앙숙인 명나라를 도와준다. 이에 후금은, 배후를 위협하는 조선을 먼저 정복하여 후환을 없앨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후금의 태종은 군사 3만여 명을 이끌고 평양을 거쳐 평산으로 들이 닥쳤다. 그게 바로 “정묘호란(1627)” 이 사실을 알게된 인조와 제신들은 이미 강화도로 도망가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내신들 사이에서는 최명길 등의 주화론이 우세하여 청과 타협하길 원하였다. 이에 후금은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