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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세조 수양대군 - 단종의 왕자리를 빼앗은 사건, 계유정난

토끼와잡학다식 2020. 2. 2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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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서거

 

1450년, 세종이 죽은 후

왕실은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그 후 세종의 장남 문종(1450~1452)이 재위 2년 만에 타계하자,

문종의 외아들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조선 제 6대임금 단종

 

그가 바로 6대 임금 "단종"(1452~1455)

 

즉위 당시 단종은,

누구보다 외로운 상태였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은 후 죽었고,

 

현덕왕후

 

할머니 소헌왕후도 즉위 전 타계하였다.

 

소헌왕후

 

이러한 상황을 예감한 문종은,

죽기 전 영의정 황보인과

우의정 김종서,

좌의정 남지 등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하고 눈을 감았다.

 

이에 따라 황보인과 김종서가 실권을 잡고

모든 정사를 좌지우지하을 뿐만 아니라

세조 수양대군을 견제하였다..

 

김종서

 

이 때문에 재위 당시 단종은

거의 허수아비 신세였다.

 

선왕의 유지를 받아

나이 어린 단종을 보필한다는 

나름대로의 명분이었던 것이다.

 

단종이 즉위하던 무렵,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은

 

안평대군

 

당시 재상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비교적 야망이 많은 둘째 수양대군(세조) 보다는

안평대군을 더 선호하였다.

 

안평은 무예, 글, 서사에 모두 능하여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안평과 김종서 등 

단종을 지지하는 세력과

수양대군(세주)을 왕으로 세우려는 세력들로

경쟁구도를 이루었다.

 

재상들과 대화를 추구하던 안평과 달리

수양은 무사들을 적극 포섭했다.

또한 책사 한명회의 조언으로 

왕에 대한 열망을 품기 시작한다.

 

 

한명회는 문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반란이 나면 문인들은 쓸모가 없습니다"

라며 무사들을 규합하라고 조언했다.

 

한명회

 

한명회의 조언을 바탕으로

국왕의 경호를 맡던

내금위 소속들의 무장들을

집중적으로 포섭하였고,

그 결과 유수, 유하 등의 장군들이

수양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유수, 유하 장군

 

또한 내금위 소속 무사들의 처우 개선 등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기도 하였다.

안평대군과 수양대군 사이에서

끝없이 경쟁하던 도중,

한명회의 권유로 살생부를 작성하였는데,

그중에 한 명이 안평대군의 측근인 

"김종서"

 

살생부

 

이에 수양은 문무를 겸비한 김종서를 제거함으로써

기선을 제압하기로 한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은

수하를 이끌고 김종서의 집에 들이닥친다.

김종서 부자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철퇴를 휘둘러 김종서를 쓰러뜨렸다.

또한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렇게 김종서를 제거한 뒤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일제히 궁궐로 쳐들어 간다.

단종에게 고하기를,

"김종서가 난을 일으켜 안평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해서 김종서를 처단하였습니다"

라고 말하며 단종을 진정시켰다.

 

그는 이어 조정의 재신들을 입궐하라 하였고

살생부에 적혀있는 명단대로

재신들을 모두 처단하였다.

이렇게 왕권을 장악하는데,

이 사건이 바로 "계유정난"

 

안평대군은 붕당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수양이 사약을 내려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로부터 2년 뒤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강탈하고

제7대(1455~1468)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경국대전 편찬, 과전법 폐지, 호패법 실시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지만

오늘날 그를 폭군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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